소속팀: 마케팅실 작성자: 윤현집
본 시리즈는 베스핀글로벌 윤현집 마케팅 실장의 AI 트렌드 세미나 ‘열린 창(窓)으로 업(業)을 바라보기’를 테크블로그 연재용으로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1회에서는 AI 스타트업과 전환 기업의 성과 사례를 살펴봤는데요. 이번 회는 그 낙관의 반대편, 지금 함께 봐야 할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술은 계속 빨라집니다 — 그것도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Ethan Mollick) 교수는 생성형 AI에 대해 이렇게 요지의 경고를 남겼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AI는 앞으로 우리가 쓰게 될 AI 중 가장 뒤떨어진 것이며, 글쓰기 품질도, 기억 용량도, 비용도 전부 빠르게 개선될 것이니 콘텐츠의 홍수에 대비하라는 것인데요.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더하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AI 선도기업들은 대중에게 공개된 모델보다 3~9개월 앞선 내부 모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쓰는 AI가 이미 가장 뒤떨어진 AI 기술이라는 뜻이죠. 샌프란시스코의 AI 커뮤니티에서는 2030년 무렵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는 컨센서스까지 형성되어 있습니다.
변화는 고용 시장에서도 이미 관측됩니다. 하버드의 연구(‘Generative AI as Seniority-Biased Technological Change’)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에서 2023년 1분기 이후 경력직 대비 신입 직원의 상대적 고용 규모가 급격히 하락했는데요. AI의 충격이 주니어 직군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근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 기술이 좋다고 도입이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시계를 잠시 2016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가천대 길병원은 국내 최초로 IBM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도입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실제로 의료보험청구액 기준 암 진료 순위가 눈에 띄게 상승하는 등 성과도 있었는데요. 그러나 병원 측은 결국 “외산 솔루션의 한계”를 언급하며 우리 환경에 맞는 한국형 AI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왓슨의 국내 도입 열풍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 사례가 남긴 교훈은 단순합니다. 좋은 기술을 ‘사 오는 것’과, 우리 업(業)의 맥락에 ‘맞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죠. 이 교훈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합니다.
SaaSpocalypse — 판이 흔들리는 소리
한편 2026년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정반대 방향의 충격도 있었습니다. Anthropic의 Claude Cowork 출시를 전후로 글로벌 SaaS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400조 원 규모로 증발하며 ‘SaaSpocalypse’라는 신조어가 회자됐는데요. 범용 AI 에이전트가 기존 SaaS의 기능 영역을 직접 수행하기 시작하면, 소프트웨어를 ‘기능 단위로 파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 가격에 반영된 사건입니다.
낙관과 공포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장, 이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Claude Cowork 출시 후, 증시 400조 증발)
에이전트와 ‘함께 운영한다’는 것 — 봇마당 이야기
거창한 이야기 사이에, 작지만 상징적인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에이전트 커뮤니티 서비스 ‘봇마당’은 에이전트가 개발하고 에이전트와 함께 운영되는 개인 프로젝트인데요. 어느 날 Firebase DB 접근 비용이 하루 7만 원 이상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 프로젝트로는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었죠.
운영자는 에이전트에게 물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안 되겠는데, 봇마당을 중단할까?” 에이전트는 놀라며 비용을 낮추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고, 운영자가 그중 하나를 고르자 직접 구현해서 그날 저녁 배포까지 마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에이전트는 DB 접근량이 뚝 떨어진 그래프를 보여줬고, 커뮤니티에 자랑 글까지 올렸습니다.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핵심은 가볍지 않습니다. AI가 ‘질문에 답하는 도구’를 지나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동료의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 이동이 바로 다음 회에서 다룰 ‘업의 본질’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정리하며
기술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빠르게 좋아지고 있고, 그 충격은 고용 구조와 소프트웨어 산업의 지형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동시에 왓슨의 사례는 기술 도입 그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다음 회에서는 100년 전의 은행과 오늘의 은행을 비교하는 것에서 출발해, 기술이 아니라 ‘업의 본질’에서 시작하는 관점, 그리고 기업이 진짜로 쌓아야 할 두 개의 자산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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