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팀: 마케팅실 작성자: 윤현집
본 시리즈는 베스핀글로벌 윤현집 마케팅실장의 AI 트렌드 세미나 ‘열린 창(窓)으로 업(業)을 바라보기(울산 편)’를 테크블로그 연재용으로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2회에서는 기술 낙관의 반대편에 있는 경계선을 살펴봤는데요. 이번 회는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가, 즉 ‘업의 본질’과 ‘진짜 자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00년 전의 은행, 2026년의 은행
100년 전 은행 창구의 장부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요? 거래일자, 입출금액, 잔액입니다. 2026년의 모바일 뱅킹 앱에는 무엇이 찍혀 있나요? 거래일자, 입출금액, 잔액입니다. 업의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재화 중개가 은행 업의 본질이죠. 100년 동안 바뀐 것은 그 본질을 다루는 프로세스, 즉 디지타이제이션(Digitization)과 프로세스 혁신(Process Innovation)이죠.
여기서 두 단어를 사전적으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 혁신(革新):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 혁명(革命):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
지금의 AI Transformation은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전통 기업은 AI로 자기 업의 프로세스를 혁신하고(GE의 제조, UPS의 물류, 로슈의 의료처럼), 스타트업은 AI를 무기로 그 산업 자체에 혁명을 겁니다(샤오미, 에어비앤비, 팔란티어처럼). 어느 쪽이든 출발점은 같습니다.
업의 본질, 그리고 그 업이 다루는 데이터입니다.
닭고기 회사는 사실 데이터 회사입니다
하림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하림 설립 초기에는 계란의 부화 날짜를 받기 위해 경영진이 점집을 찾았다는 풍문이 있더라고요. 초복, 중복, 말복 날짜를 맞추지 못한 닭의 수요와 공급의 결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닭고기 회사가 다루는 데이터를 나열해 보면 놀라운데요. 농가 사육 정보, 사료 재고, 원부재료 재고, 기후 동향, 질병 정보 같은 현장 데이터부터, 수요 예측, 육계 사육 추이, 국내외 시장 가격, 소비 트렌드, 경쟁사 동향, 급식 같은 국가 정책, 환율과 무역수지 같은 거시 지표까지. 이 모든 데이터를 버무려 ‘언제 얼마나 키우고 언제 팔 것인가’라는 타이밍의 싸움을 하는 것이 이 업의 본질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결국 이런 구조입니다. 모든 산업이 데이터 수집자(Data Collectors)와 데이터 브로커, 서비스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데이터 경제 생태계로 재편되고, 산업과 산업 사이로 데이터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혁신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죠. AI는 그 흐름의 속도를 극적으로 높인 촉매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산은 두 개뿐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 시대 기업의 자산은 명확하게 정리됩니다. 모델(Model)은 자산이 아닙니다. API로 누구나 같은 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인데요. 자산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 ① Harness (하네스) | ② Domain Data (도메인 데이터) |
|---|---|
| 도구·스킬·평가·가드레일의 조합 | 현장에서만 쌓이는 데이터와 접근권 |
| 남이 베끼려면 당신의 실패 로그가 필요합니다 |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
| 모델을 바꿔도 그대로 남습니다 | 대기업도 외부인에게는 주지 않습니다 |
| 쌓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게 방어선입니다 | 당신이 있는 현장에 있습니다 |
모델은 ‘사는 것’이고, 이 둘은 ‘쌓는 것’입니다. 투자자가 보는 것도 이 둘인데요. IR에서 “우리는 GPT를 씁니다”는 자산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현장의 로그를 3년 갖고 있습니다”가 자산입니다.

<도메인 데이터와 프로세스의 연결이 당신의 AI 자산입니다.>
현장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우위입니다
이 프레임으로 보면 흥미로운 역전이 하나 보입니다. 조선·자동차·화학·중장비·물류·에너지·항만 같은 산업 현장을 곁에 둔 지역과 팀은, 실리콘밸리가 갖지 못한 것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모델은 API로 살 수 있고, 하네스는 6개월에서 1년쯤 시간을 들이면 만들 수 있지만, 도메인 데이터는 현장에 있어야만 쌓이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산업 현장이 밀집한 울산에는 지금 자본이 모이고 있습니다. 국내 첫 1GW급 AI 데이터센터가 추진되고(SK, 울산미포산단 100MW → 2029년 1GW 확대), 영남권 추가 AIDC 유치 논의까지 더해져 ‘1+1GW’ 구도가 검토되고 있죠. 2027년 울산의 전력 자립률 전망은 238%로, AIDC를 감당할 전력이 이미 있는 도시입니다. 여기에 국내 제조업 수출액의 12%라는 현장 데이터의 밀도가 더해집니다. 전력과 현장 데이터, 둘 다 서울이 갖지 못한 것인데요. 피지컬 AI가 데모를 벗어나는 지금, 그 데모가 돌아갈 공장이 옆에 있다는 것은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대기업의 현장 문제를 아는 팀이 그 대기업의 다음 파트너가 됩니다. MIT 조사에서 외부 파트너 협업형 AI 프로젝트의 성공률이 67%로 나타났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에이전트 컴퍼니 — 하네스가 작동하는 모습
하네스가 실제로 작동하면 어떤 모습일까요? 베스핀글로벌에서는 직원 한 명이 수십 개의 AI 에이전트를 운영합니다. 나아가 ‘에이전트 컴퍼니’ 실험에서는 프로젝트와 목표만 입력하면 Agent CEO가 미션을 파악해 에이전트들에게 업무를 할당하고, 사람은 메신저로 진행 상황을 확인하며 계획을 승인하는 구조까지 구현되어 있는데요. 도구·스킬·평가·가드레일이 조합된 하네스가 있기에 가능한 운영 방식입니다.
정리하며
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바뀌는 것은 프로세스이고, 그 프로세스를 바꾸는 힘은 모델이 아니라 도메인 데이터와 하네스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자산은 어떻게 쌓기 시작해야 할까요? 마지막 회에서는 내일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을 다루겠습니다. 10문항 자가진단, 스타트업이 빠지는 3가지 함정, 그리고 4주 실행 플랜입니다.